다가올 AGI 시대, 인간은 무엇으로 먹고살까: '노동'에서 '증명'으로

다가올 AGI 시대, 인간은 무엇으로 먹고살까: '노동'에서 '증명'으로

왜 이 질문이 중요해졌나

LLM을 쓰며 감탄하고, 다른 사람들과 경험담을 나누다 보면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인간은 앞으로 뭘 해서 먹고살지?”

LLM이 지식 노동을 빠르게 가져가고 있고, 피지컬 AI도 계속 발전하고 있으니까 이 질문이 과장이 아닌 시대가 된 것 같다. 훗날 AGI가 노동을 크게 대체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밥을 먹고, 옷을 사고, 월세를 내며, 가족을 꾸리고 부양해야 한다. 사실 나도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예측도 자신 없고. 그래도 그냥 요즘 드는 생각을 편하게 정리해보면, 완전히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고 느낀다.

노동과 증명, 인간의 일은 두 가지로 나뉜다

복싱 경기 장면
<인간의 증명과 경쟁의 경제(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내가 자주 떠올리는 구분이 하나 있다. 인간이 하는 일은 대충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는 점이다.

  •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 것(노동, 생산, 돌봄, 운영)
  • 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하는 일(도전, 놀이, 스포츠, 창작)

첫 번째는 AI가 점점 잘할 거다. 이건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두 번째는 좀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체스나 바둑이 좋은 예다. 기계가 인간보다 훨씬 강해졌는데도 인간 경기는 여전히 본다. 에베레스트 등반도 비슷하다. 효율만 따지면 굳이 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사람들은 거기에 열광하고 후원하고 이야기를 소비한다. 복싱, UFC, 마라톤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변화는 인터넷 방송에서도 이미 나타났다. 우리 바로 윗세대만 해도 인터넷 방송으로 돈을 번다는 개념 자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켠왕이나 스피드런처럼 무엇인가를 새로 생산하지 않는 콘텐츠도 하나의 시장이 되었고, 실제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이 문장으로 정리하게 된다.

인간은 인간의 증명을 소비한다.

스포츠를 넘어, 개인의 증명 전반이 시장이 된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미래에 스포츠 자체가 커진다는 얘기만은 아니다. 더 정확히는, 개인의 증명 행위 전반이 시장이 될 수 있겠다고 가설을 세워보는 것이다. 지금은 그냥 쓸데없어 보이거나 괴짜 이벤트처럼 보이는 것도, 룰과 포맷, 커뮤니티가 붙는 순간 충분히 소비 가능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 집중력, 반응속도, 기억력 같은 인지 리그
  • 감각/균형/적응을 겨루는 신체 감각 리그
  • 제한 시간에 장비를 만들어 미션을 푸는 공학 제작 리그
  • 지역 문제 해결 성과를 겨루는 커뮤니티 리그
  • 장인 기술을 겨루는 숙련 리그
  • 인터넷 방송의 켠왕/스피드런/챌린지처럼 개인의 수행을 보여주는 스트리밍 콘텐츠
  •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실험적 도전이라도 사람들이 의미를 붙이면 시장이 되는 콘텐츠

여기서 바로 현실적인 질문이 나온다.
“그래봤자 상위 몇 명만 먹고사는 거 아냐?”

이 반론이 꽤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핵심은 스타 몇 명이 아니라 중간층이 먹고살 수 있는 구조다. 즉, 메이저 리그 하나가 아니라 계층적으로 다양한 리그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구조가 만들어지면 돈 버는 사람이 증명자만은 아닐 거다.
코치, 심판, 기록관, 운영자, 해설, 회복 케어, 장비 피팅은 물론이고, 스트리밍 제작/편집, 커뮤니티 운영, 챌린지 기획 같은 서포터 직군도 같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증명의 경제 3축 모델
<증명자 시장-서포터 시장-공공 안전망 3축 모델>

그래서 돈은 어디서 도나

수익 구조도 한 군데에서만 오긴 어려울 것 같다. 대충 이런 혼합형이 현실적이다.

  • 소비자: 티켓, 구독, 후원, 굿즈
  • 기업: 스폰서십, 장비/브랜드 매출
  • 플랫폼: 중계와 광고 수익 분배
  • 공공: 지자체 팀 운영, 시설, 생활체육 예산

특히 공공 역할은 매우 중요해질 것 같다. 지금도 시청/도청 소속 팀이 있고, 그런 구조 안에서 선수나 코치가 안정적으로 활동하는 기반이 마련돼 있다. AI 전환기엔 이런 기반이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 기반이 넓어질수록 참여 인구가 늘고, 결국 사람들이 무엇을 배우려 하는지도 달라질 것 같다. 나는 오히려 인문학, 심리학, 인체학 같은 분야의 수요가 더 커질 거라고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AI가 강해질수록 인간은 더 인간에게 집중하게 되고, 인간 자체를 더 깊게 탐구하려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가 어느 정도는 ‘인간 전문가’가 되려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자기 감정과 동기, 신체와 습관, 관계와 서사를 더 잘 이해해야 자기만의 증명 가치와 가능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변하지 않는 것

정리하면, 나는 AI 시대를 완전 암울하게만 보진 않는다. 그렇다고 무조건 장밋빛도 아니다. 그냥 방향이 달라진다고 본다. 노동의 일부는 기계가 가져가고, 인간은 오히려 더 인간다운 영역(증명, 서사, 관계, 도전)에 집중하게 되는 쪽으로.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AI가 노동을 대체할수록, 인간 경제의 중심은 ‘생산’에서 ‘증명’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예전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생 때 TV에 힙합 댄서들이 나오던 장면을 보며 아버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걸로 입에 풀칠이나 하겠냐. 나중에 관절 나가면 오래 하지도 못할 텐데. 먹고살려면 평생 직장을 찾아야지.”

그때는 그 말이 너무 당연하게 들렸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 ‘당연함’ 자체가 시대와 함께 계속 바뀌어 왔다.

그래서 나는 훗날 이런 대화가 오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얘야, 옛날엔 사람이 직접 생산하고 노동해서 돈을 벌었단다.”

“네? 그렇게 해서 어떻게 돈을 벌어요? 사람들에게 증명할 이야기가 없잖아요.”

지금은 이 대화가 조금 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이미 지나온 변화 속도를 생각하면 완전히 허황된 상상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핵심은 하나다. 인간은 여전히 인간을 보고, 인간의 증명을 소비한다. 이건 변하지 않는 가치 중 하나다.

참고 링크